
지켜져야 할 법치주의
STAFF's INSIGHT 34기 2조
최상진, 김소윤, 박한수, 송현석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구치소 문을 나서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이 부회장은 2015년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 및 경영권 승계를 위해 박근혜 전 대통령과 최순실 씨 측에 청탁한 혐의를 받았다. 이 혐의가 인정되어 올해 1월 파기환송심에서 징역 2년 6개월의 실형을 선고받았으나, 법무부의 가석방 결정으로 8월 13일 출소하며 형 집행이 정지된 것이다.
이 부회장이 재판 과정에서 구속 수감된 기간을 합산하면 이미 1년 6개월이 경과했다. 법무부가 정한 가석방 심사 기준, 복역률 60퍼센트를 충족한 셈이다. 이 부회장의 행상이 양호하여 개전의 정이 현저하다는 당국의 판단에도 달리 반박할 근거는 없다. 그럼에도 이 부회장에 대한 가석방 결정을 놓고 갑론을박이 이어졌다. 단지 법령상의 요건을 충족하는 것만으로는 일찍 석방될 수 없다는 점을 모두 알기 때문일 터이다. 대한민국 최대 기업의 총수에게 딸린 경제적 권력이 이번 결정에 영향을 미친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경제 상황을 고려했다는 법무부장관의 변, 국익을 위한 결정이라는 대통령의 언급이 이 사실을 뒷받침한다.
역대 정권은 정치적 성향을 가리지 않고 국익을 명분 삼아 재벌에게 사면의 관용을 베풀었다. 문재인 정권은 더 이상의 중대 부패범죄 사면은 없을 것이라 장담하며 오랜 유습에 종지부를 찍는 듯했다. 어쩌면 이번에도 문 대통령은 사면 대신 가석방을 선택하여 원칙을 지키면서도 실리를 챙긴 책략에 탄복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과연 그 결정이 실로 지혜로운 것인지는 의문이 남는다.
가석방 결정은 재벌 특혜를 위한 법치주의 훼손
법무부가 지난 4월 가석방 심사 기준을 완화하며 밝힌 가석방 출소율은 28.7퍼센트였다. 이전까지 통상 형 집행률이 80퍼센트를 넘은 경우에 한하여 가석방이 이루어졌으나, 기준을 60퍼센트로 완화하자 이 부회장이 마침맞게 대상에 포함됐다. 물론 이 기준은 법률에 규정되지 않은 관습에 가깝다. 형법 72조에 따르면, 유기징역의 경우 형기의 3분의 1만 복역해도 가석방 대상이 될 수 있다. 그러나 복역률 70퍼센트 미만 가석방자는 최근 그 수가 늘고 있음에도 여전히 전체 가석방자의 1퍼센트가 안 된다. 또한 이 부회장은 앞서 언급한 국정 농단 재판 외에도 경영권 불법 승계 혐의와 관련하여 1심 재판을 받고 있다. 오는 10월에는 약물 불법 투약 혐의에 관한 정식 재판도 시작된다. 이런 상황에서 내려진 가석방 결정은 무리한 재벌 특혜로 볼 수밖에 없다.
일각에서는 이번 결정이 부패범죄 사면 배제 원칙을 사실상 어긴 것이라고 지적한다. 사면과 달리 가석방은 형의 집행을 유지한 채 조건부로 출소하는 데 그치며, 보호관찰 및 취업 제한 등 제약이 따른다. 그러나 법망의 허점을 이용하여 미등기・비상근 임원으로서 기업 경영에 관여할 여지가 있다. 또한 가석방에 붙은 명분을 빌미 삼아 이 부회장 측에서 취업 제한 해제를 요청할 수도 있다. 결국 원칙 파기에 따르는 부담을 덜기 위해 법무부장관 명의의 가석방을 선택했을 뿐, 사실상 사면에 준하는 효과가 발생하는 셈이다. 정부가 이를 모를 리 없음에도 기존의 원칙에 대해 일언반구 언급하지 않는 것은 곧 이번 결정으로 법치주의를 훼손했노라고 시인한 것이다.
총수 부재가 삼성 실적에 영향을 준다?
이 부회장의 가석방이 국익을 위한 결정이라는 논리에도 허점이 많다. 그간 삼성이 거둔 실적을 보면 허점은 명백해진다. 삼성전자는 올해 1분기에 매출 65조 원, 영업이익 9조 3천억 원의 실적을 기록하며 1분기 기준 사상 최대 매출을 달성했다. 이어 2분기에는 매출 63조 원, 영업이익 12조 5천억 원을 달성했을 뿐 아니라 반도체 실적의 대폭 상승을 기록하며 부진에 따른 우려를 씻어 냈다. 이러한 ‘어닝 서프라이즈’는 총수의 부재에도 삼성이 여전히 건재하다는 사실을 보여 준다.
기업의 성과를 가시적인 영업이익 등 수치만으로 어림할 수 없으며, 총수의 존재는 도전적 경영과 업계 선두 유지를 위해 중요하다는 반론도 있다. 그러나 지난 5월 삼성은 미국에 대한 약 20조 원 규모의 반도체 투자 계획을 발표했다. 총수의 부재 상황에서도 이사회 등 삼성의 의결 기관이 대규모의 결정을 내릴 수 있음을 방증한 것이다. 또한 해외 기업과의 격차 감소를 단순히 이 부회장의 구속 탓으로 돌리는 것은 국제 경제의 복잡한 흐름을 간과한 주장이다.
삼성의 이익과 대한민국의 국익
물론 법적 고려를 배격한다면, 수감 중인 총수보다는 정상적으로 업무를 보는 총수가 기업 경영에 훨씬 도움이 될 것이다. 그러나 삼성의 실적을 지상 목표로 내세우다가 자칫 삼성의 이익을 국익과 동일시해서는 안 된다. 이 부회장이 가석방 결정에 보답이라도 하듯 원대한 투자 및 고용 계획을 내놓고, 코로나 백신 수천만 도즈를 구해 온들 결코 충족할 수 없는 국익이 분명히 존재한다. 국민의 총의가 모여 만들어진 법의 엄정함 앞에 국민 각각이 동등한 존재로 여겨질 것이라는 신뢰, 이 신뢰야말로 국민으로 하여금 정의가 살아 있다는 희망을 품고 공익을 지향하게 함으로써 무형의 국익을 창출해 내는 원천이다. 이번 가석방 결정이 수치로 나타나는 유형의 국익을 좇다가 그 기반을 이루는 무형의 국익을 저버린 것은 아닌지 돌아봐야 한다.
마치며
헌법이 천명하는 법 앞의 평등은 빈부의 격차를 뛰어넘는 가치이다. 막대한 부를 바탕으로 사회에 공헌하는 최대 재벌의 총수도 예외가 될 수는 없다. 법률의 평등한 적용에 예외를 두는 것은 곧 법치주의의 훼손으로 직결된다. 가석방 결정에 찬성하는 여론이 제아무리 높다 해도 마찬가지이다. 국민의 권력이 헌법을 비롯한 모든 법질서의 원천이라는 이유만으로, 여론에 따른 법의 자의적 적용을 정당화할 수는 없다.
기업 승계 과정에서 법을 어긴 총수가 형을 다 살지 않은 채 버젓이 경영 일선에 복귀하는 촌극이야말로 삼성의 ‘오너 리스크’요 법치주의에 대한 유린이다. 그러나 이미 풀려난 이 부회장에게 재수감을 명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앞으로 들어설 정권이 판결에 대한 개입의 엄중함을 절실히 깨닫고, 그 사용을 극도로 삼가기를 바랄 뿐이다.
*해당 칼럼 내용은 본 단체의 의견과는 무관합니다.
지켜져야 할 법치주의
STAFF's INSIGHT 34기 2조
최상진, 김소윤, 박한수, 송현석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구치소 문을 나서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이 부회장은 2015년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 및 경영권 승계를 위해 박근혜 전 대통령과 최순실 씨 측에 청탁한 혐의를 받았다. 이 혐의가 인정되어 올해 1월 파기환송심에서 징역 2년 6개월의 실형을 선고받았으나, 법무부의 가석방 결정으로 8월 13일 출소하며 형 집행이 정지된 것이다.
이 부회장이 재판 과정에서 구속 수감된 기간을 합산하면 이미 1년 6개월이 경과했다. 법무부가 정한 가석방 심사 기준, 복역률 60퍼센트를 충족한 셈이다. 이 부회장의 행상이 양호하여 개전의 정이 현저하다는 당국의 판단에도 달리 반박할 근거는 없다. 그럼에도 이 부회장에 대한 가석방 결정을 놓고 갑론을박이 이어졌다. 단지 법령상의 요건을 충족하는 것만으로는 일찍 석방될 수 없다는 점을 모두 알기 때문일 터이다. 대한민국 최대 기업의 총수에게 딸린 경제적 권력이 이번 결정에 영향을 미친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경제 상황을 고려했다는 법무부장관의 변, 국익을 위한 결정이라는 대통령의 언급이 이 사실을 뒷받침한다.
역대 정권은 정치적 성향을 가리지 않고 국익을 명분 삼아 재벌에게 사면의 관용을 베풀었다. 문재인 정권은 더 이상의 중대 부패범죄 사면은 없을 것이라 장담하며 오랜 유습에 종지부를 찍는 듯했다. 어쩌면 이번에도 문 대통령은 사면 대신 가석방을 선택하여 원칙을 지키면서도 실리를 챙긴 책략에 탄복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과연 그 결정이 실로 지혜로운 것인지는 의문이 남는다.
가석방 결정은 재벌 특혜를 위한 법치주의 훼손
법무부가 지난 4월 가석방 심사 기준을 완화하며 밝힌 가석방 출소율은 28.7퍼센트였다. 이전까지 통상 형 집행률이 80퍼센트를 넘은 경우에 한하여 가석방이 이루어졌으나, 기준을 60퍼센트로 완화하자 이 부회장이 마침맞게 대상에 포함됐다. 물론 이 기준은 법률에 규정되지 않은 관습에 가깝다. 형법 72조에 따르면, 유기징역의 경우 형기의 3분의 1만 복역해도 가석방 대상이 될 수 있다. 그러나 복역률 70퍼센트 미만 가석방자는 최근 그 수가 늘고 있음에도 여전히 전체 가석방자의 1퍼센트가 안 된다. 또한 이 부회장은 앞서 언급한 국정 농단 재판 외에도 경영권 불법 승계 혐의와 관련하여 1심 재판을 받고 있다. 오는 10월에는 약물 불법 투약 혐의에 관한 정식 재판도 시작된다. 이런 상황에서 내려진 가석방 결정은 무리한 재벌 특혜로 볼 수밖에 없다.
일각에서는 이번 결정이 부패범죄 사면 배제 원칙을 사실상 어긴 것이라고 지적한다. 사면과 달리 가석방은 형의 집행을 유지한 채 조건부로 출소하는 데 그치며, 보호관찰 및 취업 제한 등 제약이 따른다. 그러나 법망의 허점을 이용하여 미등기・비상근 임원으로서 기업 경영에 관여할 여지가 있다. 또한 가석방에 붙은 명분을 빌미 삼아 이 부회장 측에서 취업 제한 해제를 요청할 수도 있다. 결국 원칙 파기에 따르는 부담을 덜기 위해 법무부장관 명의의 가석방을 선택했을 뿐, 사실상 사면에 준하는 효과가 발생하는 셈이다. 정부가 이를 모를 리 없음에도 기존의 원칙에 대해 일언반구 언급하지 않는 것은 곧 이번 결정으로 법치주의를 훼손했노라고 시인한 것이다.
총수 부재가 삼성 실적에 영향을 준다?
이 부회장의 가석방이 국익을 위한 결정이라는 논리에도 허점이 많다. 그간 삼성이 거둔 실적을 보면 허점은 명백해진다. 삼성전자는 올해 1분기에 매출 65조 원, 영업이익 9조 3천억 원의 실적을 기록하며 1분기 기준 사상 최대 매출을 달성했다. 이어 2분기에는 매출 63조 원, 영업이익 12조 5천억 원을 달성했을 뿐 아니라 반도체 실적의 대폭 상승을 기록하며 부진에 따른 우려를 씻어 냈다. 이러한 ‘어닝 서프라이즈’는 총수의 부재에도 삼성이 여전히 건재하다는 사실을 보여 준다.
기업의 성과를 가시적인 영업이익 등 수치만으로 어림할 수 없으며, 총수의 존재는 도전적 경영과 업계 선두 유지를 위해 중요하다는 반론도 있다. 그러나 지난 5월 삼성은 미국에 대한 약 20조 원 규모의 반도체 투자 계획을 발표했다. 총수의 부재 상황에서도 이사회 등 삼성의 의결 기관이 대규모의 결정을 내릴 수 있음을 방증한 것이다. 또한 해외 기업과의 격차 감소를 단순히 이 부회장의 구속 탓으로 돌리는 것은 국제 경제의 복잡한 흐름을 간과한 주장이다.
삼성의 이익과 대한민국의 국익
물론 법적 고려를 배격한다면, 수감 중인 총수보다는 정상적으로 업무를 보는 총수가 기업 경영에 훨씬 도움이 될 것이다. 그러나 삼성의 실적을 지상 목표로 내세우다가 자칫 삼성의 이익을 국익과 동일시해서는 안 된다. 이 부회장이 가석방 결정에 보답이라도 하듯 원대한 투자 및 고용 계획을 내놓고, 코로나 백신 수천만 도즈를 구해 온들 결코 충족할 수 없는 국익이 분명히 존재한다. 국민의 총의가 모여 만들어진 법의 엄정함 앞에 국민 각각이 동등한 존재로 여겨질 것이라는 신뢰, 이 신뢰야말로 국민으로 하여금 정의가 살아 있다는 희망을 품고 공익을 지향하게 함으로써 무형의 국익을 창출해 내는 원천이다. 이번 가석방 결정이 수치로 나타나는 유형의 국익을 좇다가 그 기반을 이루는 무형의 국익을 저버린 것은 아닌지 돌아봐야 한다.
마치며
헌법이 천명하는 법 앞의 평등은 빈부의 격차를 뛰어넘는 가치이다. 막대한 부를 바탕으로 사회에 공헌하는 최대 재벌의 총수도 예외가 될 수는 없다. 법률의 평등한 적용에 예외를 두는 것은 곧 법치주의의 훼손으로 직결된다. 가석방 결정에 찬성하는 여론이 제아무리 높다 해도 마찬가지이다. 국민의 권력이 헌법을 비롯한 모든 법질서의 원천이라는 이유만으로, 여론에 따른 법의 자의적 적용을 정당화할 수는 없다.
기업 승계 과정에서 법을 어긴 총수가 형을 다 살지 않은 채 버젓이 경영 일선에 복귀하는 촌극이야말로 삼성의 ‘오너 리스크’요 법치주의에 대한 유린이다. 그러나 이미 풀려난 이 부회장에게 재수감을 명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앞으로 들어설 정권이 판결에 대한 개입의 엄중함을 절실히 깨닫고, 그 사용을 극도로 삼가기를 바랄 뿐이다.
*해당 칼럼 내용은 본 단체의 의견과는 무관합니다.